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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는 원제“Tyranny of the Minority(소수의 독재)”를 번역한 것이다. 소수가 권력을 갖게 되고 한 집단을 지배하게 되는 과정과 폭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대부분 마이너리티는 지배 의지 보다는 한 공동체 안에서 권리를 보장받고 평등한 지위에 대한 소망을 갖는다. 그러나 극단적 소수는 특정한 이념과 폭력적 행동으로 그 집단을 지배하려 갈등을 일으킨다.
“극단”은 그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그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식이다. 그들 지도층은 그 결여를 정치 행위나 법, 언론 등으로 호도한다. 그러나 그들을 따르는 군중에게서는 비상식, 불법, 허위, 비논리, 폭력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 안에 고립되고 응축된 에너지는 권력 획득을 위해 이용된다.
이들이 지배세력이 되려 한다면 무엇인가를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법이든 상식이든 여론이든…. 그 집단의 양심에서 일어나는 회의를 걷어내기 위해 합법적인 전략을 세운다. 히틀러를 앞세운 나치당이 소수였지만 독일의 지배 권력이 되는 과정에서 법률가들이 정당성을 제공해주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다.
작가는 19-20세기, 프랑스나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서 소수가 권력을 잡거나- 때로 실패하면서- 정치 지형이 변화되는 역사들을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사법부가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고, 언론에 대한 규제법을 만들어 합법적 탄압을 하면서 장악하고 지배를 넓혀간다. 헌법적 수단을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를 허물어뜨리는 모습은 오래된 각본이고 오늘날도 유효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현실과 유사하고, 그 해법이 오래 걸리고 때로 무력해서 답답하다.
작가는 남북전쟁 이후부터 트럼프 집권 시기까지 소수집단이 권력을 획득하고 다수를 지배한 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재건시대 이후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기 위해 아직은 소수당이었던 민주당이 취한 전략들이 그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정치 활동과 소수 집단의 폭력은 미국이 다인종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첫 출발을 지체하게 했다. 이후 남부에서는 한 세기 동안 민주당 독재가 이어졌다. 이런 양상은 더욱 교묘해졌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정치적 지형 변화에 따라 그 스탠스는 공화당에게 넘어갔을 뿐이다.
극단적 소수의 집권은 독재나 압제로 흐르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파괴시킨다. 다수는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던 많은 규칙들이 와해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규범들 때문에 속수무책이 된다.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그 시스템이 스스로를 지킬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 작가는 투표권 확립과 선거 제도의 보완과 지배하는 다수의 힘을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 적용된 것이지만 그 맥락에 있어 우리도 다르지 않다.
오랜만에 간 동네 미용실에서 원장님과 서로 안부를 묻고 자연스럽게 내란과 조기대선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계엄 당일 날 밤, 코인 때문에 잠을 못 잤다는 그분은 계엄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야당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논리와 상식이 없는 말들에 당황해서 듣고만 있었다.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는 말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근거를 묻자 “잘 모르고 계시네!”라는 말과 함께 격앙된 말들이 돌아왔다. 동네 이웃인데다 나는 머리를 맡기고 있는 상황이라 논쟁하지 않고 대화 주제를 바꾸려고 했다. 통신사 명의 도용 뉴스를 이야기하며 원장님은 괜찮으시냐고 했더니 마침 그 통신사라고 했다. 걱정하는 말끝에, 내가 이용하는 다른 통신사가 거론되고, 그 통신사가 중국 부품을 사용한다고 하며, 다시 중국을 비난하는 말로 이어졌다. 이후의 대화에서 나는 거의 침묵으로 대응했다. 대화는 잘 마무리하고 웃으면서 돌아오긴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왠지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만난 극단적 소수가 된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고 여기는 사람의 생각이다. 아마 그분은 그 대화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를 입 다물게 한 것은 비논리와 비상식인데, 내 침묵은 상대를 의기양양하게 한다. 합법적 전략과 정치 행위로 포장된 허위와 폭력을 수용하는 대중을 보았다. 그들은 사법과 언론을 이용해 권력을 지키려는 방식을 의심하지도 않고 받아들인다. 그들은 증오와 혐오의 대상에게 분노를 돌림으로 더욱 결집한다.
그들 내부에 힘을 응축시키는 것은 극단이라는 메커니즘이다. 고립은 그것을 더욱 강하게 하기에 봉쇄와 배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상대를 적으로 여기는 것은 서로를 극단으로 밀어놓고 고립시킨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권력을 평화롭게 넘겨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세우는데 방해하는 정신이다.
그래서……며칠 후 나는 지나는 길에 미용실 문을 열고 간식을 드리면서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