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8쪽)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그래도 털어놓는 나의 독서 근황.
두꺼운 책을 못 읽고 있다. 『사상의 좌반구』를 빌려왔는데, <포스트 여성성>만이라도 다 읽으려 했는데, 3분의 1 밖에 못 읽었다. 『폴 존슨 기독교의 역사』는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가 좋아서 상호대차했는데 시작도 못했다. 오늘 반납하러 갔는데, 장서 점검 중이라 반납도 안 된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넥서스』도 계속 ing다.
하우스 메이드 시리즈는 2권을 끝내고 3권 읽는 중이다. 장르는 스릴러지만 각각 다른 게, 1권은 쫀득하고, 2권은 달달한 느낌이 강했는데, 3권은. 교외 중산층 가정 이야기 나오는데, 숨이 컥컥 막힌다. 역시나 가정사에 약한 주부되시겠다.
들고 다니는 책은 『앨리 러셀 혹실드』와 유발 하라리의 『Money』. Vintage Minis 시리즈는 작가의 책을 주제에 맞춰 발췌한 책이다. 하라리여서 기대가 컸는데, 아... 글자 크기 어쩔것이냐. 글씨가 너무 작아서 마음이 아플 지경이다. 나의 노안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출판사를 한껏 원망해 본다. 책이 작고 예뻐서 좋아했던 사람은 내가 아니다. 저 아니에요, 진짜로.

하우스 메이드 시리즈를 아마존에서 '1클릭'으로 구매해서 아이패드로 읽고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글자를 크게 키워서 읽다가 작은 책으로 읽으려니 돋보기를 맞춰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킨들을 사야겠다 싶은데, 어떤 걸 사야 하나, 사고 나서 잘 활용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기계치의 두려움과 걱정을 얼리어답터들이 어찌 알겠는가. 하지만, 결국은 살 것이 분명하기에 알아봐야 하는데. 하/는/데. 알아볼 여력이, 에너지가, 힘이, 흥이 부족하구나. 『Lucy by the Sea 』도 계속 읽고 있다.
그리고 이 책, 『창조적 시선』을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피아제의 이론을 창조성과 연결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창조적 능력이란 자신이 이미 보고서 머릿속에 기록해놓았던 것들을 다시 꺼내어 새롭게 연결하는 편집 능력이다. 새롭게 편집하여 '표상'하고 그 새로운 편집 결과에 대한 개념, 즉 '메타언어'를 발전시키는 것이 창조성의 핵심이다. (739쪽)
창조적 능력이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더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는 편집 능력이라는 주장을, 나는 김정운님이 아니라, 장경철님의 글(『책읽기의 즐거운 혁명』)에서 먼저 읽었다. 20년 전 일이다. 핵심은 맥락, 관계, 그리고 위치성이다. 관심 가는 몇 군데만 짧게 짧게 읽고 반납하려고 하는데, 1년에 두어 번 내가 읽는 책을 가져가는 사람이 이 책에 관심을 보여 구매(97,200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찬찬히, 꼼꼼히 읽으리라.(는 다짐을 여기에 적어 두고)

아쉬운 마음에 에필로그를 읽었다. 1028쪽이라는 방대한 양의 책을 마친 저자의 심경은 어떨까. 그의 마지막 말은 뭘까. 이런저런 책을 쓰고 싶다. 그게 그의 '최후' 심경이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24곡을 내 언어로 번역'한 책을 쓰고 싶고, '카드와 노트의 차이를 젊은이들이 실제 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풀어 쓴' 책을 쓰고 싶고, '<문명은 질투>라는 제목의 책을 쓰고 싶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닷가에서 사랑스러운 강아지와 이렇게 지내다가 다 늙으면 '노인과 개'라는 책도 쓰고 싶습니다. 노인과 바다에 버금가는 책이 될 겁니다.
아, 이 책들을 다 쓰려면 난 아주 오래오래 살아야 합니다.
……
난, 아예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 (968쪽)
인간 공통의 꿈, 영생불사는 이렇게도 그려질 수 있겠다. 그럼 인류 본연의 간절한 소망에 내 것을 더한다고 해서 해될 것이 무엔가.
저 책들 다 읽고, 빌려놓은 책들 다 읽고, 사 놓고 안 읽은 책들 다 읽어야겠습니다.
난 아주 오래오래 살아야 합니다.
난, 아예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